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드네프르-카르파티아 공세 (문단 편집) === [[코르순-체르카시 포위전]]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코르순-체르카시 포위전)] 1월 24일부터 2월 17일까지 이어진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Korsun-Shevchenkivskyi|코르순-셰브첸코프스키]] 공세 (Korsun–Shevchenkovsky Offensive)에서 제1,2 우크라이나 전선군은 코르순에서 군단규모의 적을 포위하는데 성공했고[* 사단들이 연대급으로 줄어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력은 절반 정도였다.] 비록 이번에도 적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독일군은 중장비를 거의 다 잃었을 뿐 아니라 기갑예비대가 또다시 소모되어버렸다. 소련군은 공세 기간 동안 전사 및 실종 24,248명을 포함해 80,188명의 손실이 발생했다. 그러나, 소련군은 적을 포위한 뒤 공백이 생긴 전선으로 곧장 진격하지 않았다.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 사령부와 스타브카에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남부전선에서 소련군은 지속적으로 적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돌파한 전선 후방으로 파고들고 있던 점을 볼 때 아이러니하다. 이는 소련군이 아직도 기갑전력의 운용에서 독일군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독일군 사령부가 [[제4차 하르코프 공방전]]에서 아크티르카에 생긴 전선의 공백과 전선이 아예 무너져버린 [[드네프르 강 전투#s-7|드네프르 강으로의 후퇴]] 당시 기갑전력을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사령관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독일군이 괴멸할 수도 있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확인 가능하다. 소련군에게 코르순-체르카시 포위전은 남부 집단군을 제거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소규모 포위전에 불과했고 이는 소련군도 알고 있었다. [[겨울폭풍 작전|토성 작전[* 로스토프에 먼저 도달하여 코카서스의 A 집단군 섬멸]에서 소토성 작전[* 겨울 폭풍 작전을 개시하며 포위망을 뚫으러 오는 독일군 섬멸]으로 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던]]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 때와는 달리 소련군의 전력도 충분한 상태였다. 어찌 되었든 키로보그라드 전투가 도시 자체보다 그 안에 갇힌 독일군 섬멸이 더 중요했던 것처럼 코르순-체르카시 포위전도 그 안에 갇힌 독일군보다 거대한 포위망에 가둬버릴 수 있는 8군과 6군이 더 중요했으나 소련군은 이를 놓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